때는 1997-1998 시즌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리즈 유나이티드 소속의 알피 할란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로이킨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드필더들이었다. 스타플레이어를 빼내어 갔던 전력때문에 당시 리즈와 맨유의 관계는 이른바 불구대천(deadly feaud)의 관계였다. 지금은 챔피언쉽에 머물고 있는 리즈 유나이티드는 리오 퍼디난드, 해리 큐얼, 마크 비두카, 앨런 스미스, 폴 로빈슨, 리 보이어 등을 보유하고 00-01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랐던 강팀이었다.
이 악연은 전반전 리즈의 코너킥으로 부터 시작된다. 할란드와 로이킨은 서로 제공권을 위해 몸싸움을 하였고 결국 공은 할란드를 지나 라인아웃이 되었다. 성격의 기복이 심한 할란드는 심판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로이킨의 머리를 쥐어 뜯고 갔고 불같은 성질 'demon' 이란 별명을 가진 로이킨은 다음 사진과 같이 그의 머리를 가격한다.
이후 두 선수의 신경전은 계속 이어졌고 할란드는 고의적으로 로이킨의 무릎을 발로 찍어 버린다. 그리고 로이킨은 필드에 쓰러지게 되었고 그는 얼굴을 감싸쥐고 괴로워 하는 킨에게 "별것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 하며 침을 뱉고 퇴장을 당했다.
로이킨은 이 부상으로 인해 십자인대가 파열되었고 그는 높은강도의 재활훈련끝에 다음해가 되어서야 필드로 돌아오게 된다. 덕분에 디펜딩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스날에게 리그 수위를 넘겨 주었고 당시 유럽최강의 전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리그 또한 8강에 그치는 참으로 기대에 어긋난 결과를 얻게 되었다.
로이킨의 부재는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의 성적에도 이어졌고 결국 그가 없는 아일랜드는 속수무책으로 고생하다가 98 프랑스 월드컵에 본선진출에 탈락하게 된다. 선수로서 가장 화려한 시기를 부상과 싸우며 복수의 칼날을 간 킨은 다음 시즌 복귀후 맨체스터의 98-99시즌 트레블을 이끈다.
그 이후 알피 할란드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고, 격렬하기로 유명한 더비 중에 하나인 맨체스터 더비에서 만나게 될 두 선수의 악연을 고려하여 퍼거슨 감독은 킨이 할란드와 마찰이 없도록 하기 위해 평소에 뛰지 않는 위치에 그를 배치하여 불행한 사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리고 5년후 로이킨과 할란드는 맨체스터 더비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공중볼 처리 과정에서 킨은 할란드의 무릎을 고의적으로 강력하게 찍어내렸다.
킨은 쓰러져 있는 그에게 다가가 5년전 자신이 들었던 말을 똑같이 내뱉고 락커룸으로 향했다.
그리고 후에 로이 킨은 그의 자서전을 통해,
“오랜 기다림 끝에 나는 그를 강하게 가격했다.또 엄살을 부리는 그에게 더 이상 내 앞에서 우쭐거리지 말라며 비웃어 준뒤 심판의 레드 카드를 기다리지 않고 라커룸으로 발길을 돌렸다” 라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그후 할란드는 8개월정도의 재활훈련이면 선수로 복귀할수 있다고 하였지만 그는 재활에 성실하지 않았고, 서른이 넘은 나이라 재활을 한다고 해도 원만한 선수생활을 하기엔 힘들었다.
이후 영국 하원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하원의 러셀의원은 맨체스터 경찰국에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원했고 축구장 위에서 벌어진 일도 법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축구장 안에서 경기중에 행해진 반칙행위까지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뜨거워지게 된 것이다.
'축구 경기중에 벌어진 보복행위(Vendetta)와 그에 대한 법적 책임 논란' 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더니 맨체스터 시티 구단과 알피 할란드는 결국 로이 킨을 고소하기에 이르는데, 무릎 전문의에 의한 정밀 검사 결과 그의 무릎은 로이 킨의 가격이 아닌 다른 이유에 의해 이미 정상상태가 아니었다는것이 밝혀지면서 그의 고소는 기각 되었다. 결국 할란드는 은퇴하게 되었고, 로이 킨의 보복행위는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킨은 그일이 있은 후 <더 선>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나는 내가 최고의 기량에 달했던 순간에 국가를 대표하여 월드컵에 뛸 수 없었다. 재활이 엄청힘든 상황이었지만 쓰러진 나를 향해 내뱉던 그의 말을 떠올리니 도저히 포기할수 없었다." 라고 밝혔다. 킨에 대한 고소가 기각되고 할란드가 은퇴하는 결과를 남기게 됨에 따라 이 피의 복수(Vendetta)는 완성이 된 셈이다.
피의 복수를 완성한 로이킨 선생.
당시 홀딩 미드필더 중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로이 킨은 이 부상으로 인해 98 프랑스월드컵과 2002 월드컵에 출장하지 못했다.
경기중에 상대선수를 다치게 할 작정으로 반칙을 가한다는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비신사적인 행위지만 복수의 칼을 갈며 힘든 재활의 시기를 견디고 할란드와 마주치지 않게끔 격리시켰던 퍼거슨 감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5년동안 기회를 노리고 마침내 복수를 완성시켰을 순간, 그의 가슴은 오히려 두근거리고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야말로 축구장에서 벌어진 와신상담 [臥薪嘗膽].
출처 : http://soccer4u.co.kr